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관동 대지진 (문단 편집) == 복구 == 지진 이후 복구하는 과정에서 혼란이 컸던 이유는 당시 [[일본 내각총리대신]] 자리가 공석이라 내각이 어수선했던 점도 작용했다. [[가토 도모사부로]] 총리가 지진이 일어나기 일주일 전에 대장암이 악화되어 갑자기 사망해서 [[우치다 고사이]] 외무대신이 총리 권한대행 중이었다. 지진 직후 참모본부에서는 도쿄에서 다른 곳으로 천도를 검토하였다. 그러나 지진 발생 11일 후 발령된 조서에 따라 도쿄를 계속 수도로 삼기로 결정되자 천도설은 흐지부지되었고 이후 복구 과정에서 현대 도쿄의 기틀을 구성하는 [[도로]]와 [[철도]], 그리고 [[공원]] 등이 계획되어 더욱 근대적 모습으로 도시가 재건되었다. 특히 공원은 이후 있을지 모르는 대지진의 피난처 구실을 하게끔 만들어졌다. 그러나 애써 재건한 도쿄는 [[제2차 세계 대전]] 중 [[도쿄 대공습]]을 거치면서 다시 파괴되었다. 참고로 일각(특히 미국 쪽 학계)에서는 이 지진 후 복구를 도시공학적 측면에서는 그다지 높게 평가하지 않는데 대지진으로 인프라가 대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도시설계가 기존의 구조를 답습했기 때문이다. 특히 도로망의 개척이 미비하여 이 점은 현대까지도 도쿄 도심이 교통체증으로 몸살을 앓게 하는 중요한 한 가지 원인으로 지목된다. 반면 요코하마는 이 지진으로 항구 수심이 더욱 깊어지고 인프라도 도쿄보다는 더 정비되어서 현대적인 항구로 거듭났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